1. 센고쿠 료마

 

 

"타카토라."

센고쿠 료마는 꽤 오랫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았던 성대를 울렸다. 말하는법도 잊어버린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군. 오랜만에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꽤 갈라지고 제대로 된 음을 찾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의사를 전달할수 있을 만큼은 되는것 같았다. 수분기 없는 입술이 토독 소리를 내며 갈라짐과 동시에 묘한 쇳내와 함께 입술에 따가움이 돌았다. 혀로 핥은 입술은 이상하리만치 달게 느껴졌다.

 

"이봐, 타카토라."

료마의 시선이 향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덩어리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뭐야, 한동안 사람이랑 대화 한마디 안하니까 자기 이름도 까먹어버렸어? 덩어리는 힘없이 고개를 숙인채 축 늘어져있다. 잠이라도 자고있는걸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체력을 보충하려면 그게 제일이겠지. 흔들면 깨어날까, 하고 순간 생각했지만 관두기로 했다. 지금은 목소리 하나 내는것만으로도 힘에 부친다. 남을 위해 행동할만한 체력따위는 남아있지 않아. 재미없게도 미동하나 하지 않는 '덩어리' 에서 시선을 주변으로 돌려본다. 햇빛에 비쳐 맑게 빛나는 식물의 푸르름이 눈 앞을 가득 채웠다. 여기저기 비져나온 덩굴에는 맛있어보이는 과실이 맺혀 있지만 료마는 그 과실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무것도 가지고있지 않은 상태에서 먹지 못하는 과실은 희망고문만을 일으킨다. 저걸 먹으면 무슨 맛이 날까, 연구실의 병에 담겨있는걸 보며 몇번이고 생각했던것들. 무력하게 바닥에 부서진채로 널브러져있는 센고쿠드라이버가 눈에 들어온다. 센고쿠 료마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다시 그 입이 열리는 날이 올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 카도야 츠카사+오노데라 유스케

 

 

"유원지에 가고싶어."

 

그게 한참을 조용히 있던 츠카사의 첫마디였다.

먼저 나츠미랑 할아버지를 찾으러 가야하는거 아니야? 주변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전화를 걸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을 하려 고개를 들자 시야에 들어온 츠카사의 눈동자가 '괜찮으니까.' 라고 말하는것같은 기분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있던 츠카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시작한다, 의자에 걸려있던 코트를 입고,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토이카메라를 목에 건다, 오늘의 츠카사는 세계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안 따라올거야? 너 혼자 있던가."

가만히 앉아 츠카사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다가 그 말을 듣고서야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진관의 문까지 가는 길이 왠지 필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일어나는 일같이 느껴져, 마치 온 세상에 세피아톤을 깔아놓은것같다.

가만히 길을 가는 츠카사의 머리카락이 한올한올 흔들린다. 이 문을 열면 또 다른 세계겠지, 어디인지도 모를텐데 무슨 유원지에 가고싶다고 하는걸까. 머릿속이 질문으로 가득 차있지만 묻지 못한다, 단 하나의 질문이라도 던지면 츠카사가 그 자리에서 고장나버릴거같아.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앞에는 거짓말처럼 유원지가 떡하니 놓여있어서, 눈이 크게 떠진다.

"가자."

당황하는 기색도 비치지 않고 츠카사는 가만히 발을 움직인다, 목에 걸린 토이카메라가 가슴팍 앞에서 달싹거린다. 유원지는 얼마만이지, 적어도 지금 함께 다니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난 후부터는 한번도 가지 못했다. 도착한 유원지의 입구에는 웃는 표정의 흰 가면을 쓴 사람이 서있었다. 어라, 할아버지 아냐? 누가봐도 할아버지잖아. 아는 사람의 모습에 씌워진 흰 가면은 끔찍할정도의 불쾌감을 느끼게한다. 가면의 남자에게 인사를 받고 유원지에 들어선다. 신나는 BGM이 가득 깔려있는 유원지는 이상하리만치 소름이 끼친다. 아까 전 입구를 지나기 직전까지 이 유원지에 소리가 있었던가?

"..입장료 안내도 되나보네, 돈은 어떻게 버는걸까?"

"취미로 유원지 운영하는 이상한 괴짜가 주인인가보지."

이리저리 시선을 돌려보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이 유원지에는 나와 츠카사 뿐이다. 정말 이 유원지에만? 츠카사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한발을 내딛을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배어나와 옷이 축축해지는것을 느낀다. 어디로 가는거야? 저 눈 앞에 보이는것은 작은 기차였다. 기차? 저기에 타서 뭘 하게? 놀이기구의 입구에 있는것은 아까와 같은 나츠미를 닮은 가면의 여자였다. 닮은? 닮았다기엔 너무나도 본인 그 자체같은데.

"츠카사, 이거 타게? 뭔데 이게?"

"...글쎄, 유원지를 한바퀴 다 도는거같길래. 돌면서 사진이나 찍을까 하고."

그렇게 대답한 츠카사는 거침없이 입구를 -나츠미를- 통과해 기차의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있기엔 그렇겠지. 여기에서 기다리면 계속 저 사람과 있어야할것같은 두려움에 도망치듯이 자리에 앉았다. 유원지란 원래 이렇게 소름끼치는곳이었던가? 천천히 기차의 바퀴가 미끄러져 굴러감과 동시에 토이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3. 카도야 츠카사+오노데라 유스케

 

유스케는 속으로 계속해서 생각했다.

무겁게 내려꽂는 주먹을. 츠카사에게 향할 때 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고싶었다. 사실은 츠카사를 괴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걸. 세계를 지키려면 이렇게 해야해.

지구를 지키려면...

누님이 있고...

나츠미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고..

키바라가 있고, 

...카이토도 있고.

 

그리고, 츠카사 네가 있는...

 

어?

 

 

오노데라 유스케는 혼란스러웠다.

카도야 츠카사가 있는 세계를 지키고싶어서,

카도야 츠카사를 상처입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를 지키고싶어서, 너를 해치고있어.

 

그걸 깨닫고, 오노데라 유스케는 그대로 변신을 풀고 주저앉아 울고싶었다. 자신의 제일 소중한 친구를 이 이상 괴롭히고싶지 않았다. 디케이드의 마스크에 가려져,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유스케는 그 너머의 츠카사의 표정이 보이는것만 같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왠지 상처받은듯한 표정을 하는 익숙한 얼굴이 눈 앞에 그려졌다. 그 표정을 생각하니 유스케는 정말로.. 정말로 이 모든걸 끝내고싶었다.

 

이대로 그냥 모든게 파괴되어버려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면, 얼마나 편했을까. 안타깝게도 오노데라 유스케는 조금 밝기만 한 헤실대는 바보같았어도, 심지가 굳었고. 정의로웠으며. 그 누가 봐도 히어로같은 면모를 가진 남자였다. 그래서 유스케는, 아무도 보지 못할 마스크 속에서 숨죽여 말을 했다.

 

바보야, 마스크에 덮혀있으면 아무도 못 볼텐데 그렇게 참아서 뭐 해. 하고

 

마스크 너머로 전해지지 않을 말을 조용히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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