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찾아다니던 '신'은 이 사람이구나 하였으나, 그렇게 되고 나니 막상 나는 그 사실에 떨떠름해 하는 것이었다. 그는 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하고 닳아빠진 옷을 입고 있었으며, 나보다 나이도 한참은 어려 보였다. 유일하게 특별히 보이는 것은 그 두 눈이었는데, 분명 새까만 색이었으나 계속해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째선지 각각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빛나는 듯이 보였다. 나는 한참동안이나 신을 찾아다녔으나, 내가 만난 신이 이렇게나 평범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으므로(나는 때때로 금발의, 눈이 붉거나… 혹은 몸에 흐르는 피의 색이 다르거나… 가끔은 무언가 한없이 깊은 바닥의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서 있거나 하는 형상을 상상하곤 했다.) 그의 눈만을 쳐다보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빌드라고 이름 댄 남자는(아마도 본명이 아니리라, 그도 그럴 것이 빌드라니. 그런 악취미스러운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가 듣고 싶다고 사정을 하니 말해 준 것인지, 적당히 반응을 봐 가며 지어 이야기 한 것인진 몰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몇일 내리 해내고서는 그의 말을 들은 후 찜찜한 표정이 된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시선과, 그토록 원하던 신과의 만남 후에도 여전히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자신에 나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진실로 원하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노라고. 드디어 변한 내 표정을 보고 남자는 다시 입을 열어 말을 한다.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그는 내가 결과적으로 이런 깨달음을 얻을 것이리라 미리 알고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준 것 같았다. 아, 이런 부분이 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당신이라는 진짜 신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을 꺼내자 그는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나를 배웅하기 위해 일어난다. 신의 배웅을 받으며 창고의 문 앞까지 걸어가, 문을 열기 직전 다시 한번 그의 특별해 보이던 눈을 마주하려는 순간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아아, 진정한 신은 평생 혼자로 남고 싶어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들려오던 발소리는 어째서인지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것이라고는 평생 눈치채지 못한 채 살아가리라.
라고 생각했다. 뭐? 이계異界(혹은 외계일수도 있었지만)에 자생하는 식물의 열매 하나만 먹어도 인간이 아니게 된다고? 센고쿠 료마는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수백 번의 실험을 해서 확실해진 지 오래인 일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니, 사실은 꽤 문득문득 일상을 보내다가도 자주 떠올렸다.
인간이란 얼마나 덧없는 생물인가. 고작 열매 하나 잘못 먹었다고 다른 생물로 변이해버리는 것을 막지 못할 정도로 약해 빠졌어. 그래서 료마는 남들이 보면 입에 넣고 싶어져 정신을 못 차린다는 헬헤임의 열매를 앞에 두고도 찌푸린 미간이 펴질 줄을 몰랐다.
료마는 어렴풋이 마치 인간이 백신을 맞고 면역체계를 구축하듯이, 헬헤임 열매의 성분을 극소량으로 주입하기 시작해 텀을 두고 점점 양을 늘리면 아마 인간이 아니게 되더라도 자아 없이 울부짖기밖에 못 하는 괴물은 되지 않는 게 아닐까? 라는 가설을 세워보았고, 실험까지 해보던 도중 그만두었던 적이 있었다. 그야, 료마가 하려는 일은 이 외계 식물의 침범에서 인간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도구를 만드는 것이지, 천천히 자아 있는 괴물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아니었으니까. (물론- 자칭타칭 천재의 두뇌를 가진 료마가 세웠던 가설답게, 실험체에게 극소량의 열매 성분을 주사하여도 바로 변이가 시작되지는 않았다. 가설은 아마 맞았을 것이리라.)
인간은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으나, 료마는 인간으로서 남고 싶어 했다. 약하면 약한 대로 나름의 생존 방법이란 게 있는 거야. 그래서 그는 센고쿠 드라이버를 만들었으므로. 눈앞의 병에 담겨있는 헬헤임 열매를 빤히 쳐다본다. 참 지랄 맞은 만남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하지만 동시에 운명적인 만남이기도 했다. 료마는 수많은 열매들을 가지고 실험하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열매의 껍질을 까고, 달콤해 보이는 과즙이 맺힌 과육을 손에 잡아 눈앞에서 한번 슥 돌려 본 뒤 입에 물었다. 훅 올라오는 단 향이 료마의 침샘을 자극한다. 이빨 사이에 끼인 과육은 한시라도 빨리 당신에게 먹히고 싶다고 청하듯이 천천히 과즙을 속에서부터 료마의 혀 위로 흘려냈다.
그러나 료마는 이 열매를 입안으로 삼킬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뭘 하는 건가 싶어 바로 입에서 열매를 꺼내려던 그때였을까.
아, 타이밍 최악이야 타카토라.
"료마!!"
방금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온 듯한 타카토라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급히, 평소답지 않게도 허둥대며 료마의 앞으로 달려와 강제로 입안에서 열매를 빼내기 위해 손을 턱관절 부분으로 가져가려던 순간, 료마는 손으로 타카토라의 행동을 저지한 채 다른 한 손으로 비커를 잡아 자기 입에서 열매를 뱉어냈다. 혀 위에 남아있던 과즙까지 뱉어내고 물로 입을 몇 번이고 헹군 뒤에야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타카토라와 다시 눈을 맞췄다.
"...료마, 너는 괜찮다고 했지만 역시 열매의 유혹을 견디기 힘든 게 아닌가? 역시 열매를 연구할 때는 최소 두 명씩은 짝을 지어 하는 게...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네가 원한다면 더 배치할 수도 있어."
"됐어, 괜찮아. 먹고 싶다고 생각해서 입에 물고 있었던 게 아냐."
그러면 어째서, 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의 타카토라를 바라보며 료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괴물이 되어버리는 건 극구 사양이니까,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아있고 말야. 안 그래? 료마의 말대로였다. 현재의 타카토라에게 료마는 꼭 필요한 존재였으며, 료마가 없다면 곤란했다. 그가 자신의 친구인 것도 이유 중 하나였으나, 아직까진 그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센고쿠 드라이버의 개발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니니까. 아직 할 일이 산더미였다.
"..인간이란 참 약해빠졌지."
"그래.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인류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노력하는 거지. 인간은 약하지만 동시에 강해. 알고 있잖나."
흐음- 동의인지 아닌지 모호한 콧소리를 내며 료마는 자신이 뱉어낸 비커 속의 열매를 쳐다보았다. 타카토라, 너는 신체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지만 '인간성'은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면 그쪽을 택할 거야? 사실 료마는 알고 있었다. 타카토라라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선택지를 택하겠지. 그리고 생산에 필요한 자원이 제한된 드라이버보다는 불안하지만 좀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방법을 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말야 타카토라. 그건 정말 '인류'가 살아남은 게 맞는 걸까?
애초에 인간이란 뭘까? 나는 인간은 한없이 약하기만 한 생물이라고 생각해. 네가 말하는 강함을 가진 사람은 내가 알기엔 너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너는 다음 세계의 신이 되어야 해.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사람.
내가 유일하게 강하다고 생각하는 인간.
료마는 열매가 든 비커를 눈앞에 옮기며, 그 비커 너머로 타카토라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될지 빤히 알면서도 타카토라의 입에 이 달콤한 침략자를 억지로 쑤셔 넣어보고 싶었다. 타카토라라면 어쩐지, 그 이후에도 인간으로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감성적인 생각이 들어서.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리 없겠지. 알고 있어, 그러니까 이 가설은 평생 너에겐 말하지 않을 거야. 너는 인간으로서 있어 줘야 할 필요가 있거든.
고작 열매 하나. 그 열매 하나는 약하디약한 인간의 얇은 방어막을 손쉽게 뚫어버리고, 속에서부터 인간을 바꿔버린다. 료마는 이 이야기가 정말 한심하고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결말은 료마가 원하는 대로여야만 했다.
"그래서, 뭔가 용무가 있어서 찾아온 거 아냐?"
"아아, 이번에 헬헤임의 숲 조사에서 발견된 사실이다만..."
타카토라가 말을 시작함과 동시에 입안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열매의 단맛을 느끼며 료마가 비커를 책상 위에 올리자, 비커와 씨앗의 줄기가 부딪혀 나는 청명한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마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언제였더라, 팀에 들어온지 얼마 안됐던 때였던가. 미츠자네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생각을 계속 해 나갔다. 이런 말을 들었던 이유가 뭐였더라.그 날은,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형과 말다툼을 하고-물론, 타카토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있는줄도 몰랐던 숙제를 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교무실에 불려가 평소 그런애가 아닌데… 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쉬는시간을 다 허비해가며 듣는 바람에 기분이 축 처져있던 날이었다. 팀 내에서의 “쿠레시마 미츠자네“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니까. 유그드라실 주임의 동생이라는 특별한 위치의 사람이 아니니까. 최대한 사적인 이야기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감추고 있었지만 어쩐지… 어쩐지 그 날은, 자기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뭔가 투정을 부리고 싶은 날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돼서. 형의 기대가 조금, 힘들다고나 할까요…”두서없이 시작된 밋치의 불만을 천천히 듣고있던 코우타는, 중간중간 표정도 바꿔가며 나름 이 어린 동료의 고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누나는 나에 대한 기대같은건 진작에 내다 버렸었는데 말이지- 라는 생각을 한구석에서 하던 와중, 동시에 떠오른 아이디어에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축 처진 채인 밋치의 어깨를 손으로 턱 잡고 입을 열었다.
“차라리 완전 양아치같이 굴어보는건 어때!” “네!?”
그 말을 들은 밋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코우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이런. 이래서 모범생은 안된다니까~ 하는 표정으로 밋치를 보고 장난스레 씨익 웃은 코우타가 하는 말은 이러했다. 형의 기대가 너무 힘든거면, 차라리 완전히 탈선한 모습을 보여줘서- 형한테 내가 힘들다는걸 은근슬쩍 어필하는거야. 너희 형도 갑자기 변한 밋치를 보면 뭔가 이상하단걸 알고 말을 걸어보거나 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코우타스러운 발상이었던 것 같다.
“괜찮을까요, 그런 짓을 해도…” “당연히 괜찮지! 그야 가족인걸- 밋치는 평소 행실이 바르니까, 형도 이상한걸 눈치채지 않을까?”
그럴까요… 라며 고개를 갸웃하는 미츠자네를 쳐다보던 코우타는, 자자 이제 연습이다 연습! 춤 한번만 더 맞춰보고 오늘은 해산하자~! 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팀원들에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어정쩡하게 같이 일어난 미츠자네는 그래, 일단 집에 가는 길에 생각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개러지의 가운데로 향했다.
◆
“양아치같이.” 팀 연습을 마친 후, 계속해서 코우타가 말해줬던 이야기를 생각하던 미츠자네는, 결국 집 앞 대문에 다다라서까지 제대로 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양아치같이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뭔가..머리 한쪽을 깐다던가? 아니면 완전히 올려서 리젠트같은걸… 아니, 이건 내 머리길이로는 무리다. 염색을 하기?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밤 늦은 시간인데. 아니아니아니. 중요한건 외형이 아니잖아. 머뭇거리며 대문 앞에서 손잡이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도중,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츠자네.” “아.”
조용한 주변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낮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살짝 피곤한 표정의 형이 서 있었다. 이런. 집에 있는줄로만 알았는데. 내가 얼마나 대문 앞에서 얼쩡대고 있었지? 족히 5분은 넘은 것 같은데. 형은 언제부터 날 보고있었던거지? 내가 이상해보이진 않았을까? 내가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걸 혹시 들켰을까? 아까 머리를 만지작댈 때 혹시 봤나? 내 찡그린 표정도 봐버렸을까?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여태 자습하다 이제야 돌아온건가, 열심히구나… 이렇게 귀가 시간이 맞는것도 처음이군.” “어? 으응… 그러게, 항상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있거나, 형이 먼저 집에 들어가있거나 했으니까…” “그랬었지, 들어가자. 저녁은 먹었나?” “아니, 아직… 형도 아직이면 같이 먹어.” “그래.”
아무렇지 않았다. 방금 온건가? 최대한 평소를 가장하는 미츠자네의 곁을 타카토라가 지나, 미츠자네가 몇 번이고 잡았다 뗐던 손잡이를 아무렇지 않게 잡고 돌려 연다. 들어오라는 듯이 살짝 옆으로 비켜 서는 타카토라의 모습에 급하게 집 안으로 발을 들이던 미츠자네는, 문득 생각한다. 형은 기사님이 퇴근할 때 태워다주실텐데. 그러면 차고쪽에서 들어와도 되지 않나? 굳이 앞에서 내릴 이유가…? 답은 뻔했다, 아마 차고로 향하던 도중, 밤에도 잘 보일 수밖에 없는 흰색 교복을 입은 미츠자네가 대문 앞에 서 있는걸 보고 여기서 내려달라고 했겠지. 그러고보면 누가 봐도 차를 타고 퇴근했단 듯이 얇은 외투의 형은 꽤나 추워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전부 봤겠구나.’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은 반응. 방금 왔다는듯한 말투. 미츠자네는 생각했다. 자신이 양아치 같은 모습을 하고 나타나더라도, 아마 타카토라는 별 큰 반응 없이 “…네 선택이라면.”하고 아무런 질문도 해주지 않는게 아닐까? 그 생각이 든 순간, 미츠자네는 마음속 어딘가에서 뭔가를 내려놨다. 그게 무엇인지는 본인도 모르고있으며, 내려놓았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지만.
◆
“그래서? 어땠어?” “네? 뭐가요?” 다음 날, 개러지에서 연습 도중 쉬는시간. 숨을 색색 몰아쉬는 미츠자네에게 슬금슬금 다가온 코우타가 말했다. 어제 말했던 거 말야. 아. 미츠자네는 조금 생각하다,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양아치같이 행동하는건 잘 모르겠어서… 형에게 그냥 말로 전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으니까요. 어제 상담에 사귀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코우타씨.” “에이- 그래? 뭐. 잘 풀렸다니 다행인데.. 그래도 아쉽네~ 밋치의 양아치 같은 모습. 보고싶었는데말이지-” “잠깐, 코우타씨… 그런 생각으로 말하셨던 건가요?” “앗, 이런.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