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츠카 / 토끼용있음

 

 

 

 

1.

(지오 카이토 등장 직전정도의 시간대)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더럽고 질척거리며, 치졸해보이기까지 하는 이 감정을 카이토 다이키는 그냥 사랑이라고 이름붙이기로 했다. 위의 이유로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하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같은데? 싶은 부분이 있었으므로.

자기가 츠카사에게 느끼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이름붙이는건 꽤나 힘겹고 부정하고싶은 일이었으나, 아니라고 되뇌이는것도 이젠 슬슬 질려 왔기 때문이다.

10년, 절대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겠지. 그 시간을 너에게 바쳤다고 하는 건 어떨까? 10년이라는 시간을 계속해서... 네가 세계를 지난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겹치고 겹쳐서... 나름대로 로맨틱하지 않나?

카이토는 손 안에 들린 이젠 시안색으로 물들어버린 디엔드라이버를 습관적으로 돌리며 생각했다. 봐, 츠카사. 거부하기엔 우리는 너무... 마치 의도된 것 마냥 세트같지 않아? 그냥 운명에 굴복해 보는 건?

거기까지 생각하고 카이토는 불쾌한듯이 오로라 커튼을 펼친다. 운명에 굴복한다라... 기분나쁘네. 그런건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천천히 은색의 오로라로 향하는 발걸음을 뗀다. 다음 세계에서도 열심히 세계에게 반항해볼까. 굴복같은거 하지 말고.

 

방금 자기 멋대로 사랑이라 이름붙인 감정을 접어버린 참이었으나, 왠지 이 커튼을 넘으면 츠카사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손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디엔드라이버의 리듬이 아주 살짝 경쾌하게 변했다.

 

 

2.

반죠 류우가는 책상에 엎드려 새근새근 잠든 센토를 멍하니 쳐다보고있었다. 악마의 과학자.. 악마의 과학자라.

그런 별명이 무색할정도로 잠든 센토의 얼굴은 마치 천사와도 같아서, 괜히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녀석 자고있을 땐 시끄럽지도 않고 좋은데...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쓰다듬어보다 꾹 누르니, 우음... 하고 웅얼대는 소리를 내다 고개를 돌려 팔 속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어이, 센토. 책상에서 자지 말고 침대에서 자!"

"으응..."

으응은 무슨. 일어날 생각도 없구만? 반죠는 제자리에 서서 짧게 한숨을 내쉰 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은 센토를 껴안아 올린다. 무거워! 아무리 내가 스포츠 선수였대도 역시 힘빠진 성인을 그냥 옮기긴 힘들거든! 속으로 불평하는 반죠의 마음도, 자기가 옮겨지는줄도 모르고 꿈나라 여행중인 상태로 매달린채 잠에서 깰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센토를 겨우겨우 침대까지 옮겨 눕힌 반죠는, 거칠게 다뤘는데도 깨지 않는 센토를 보고 어이없단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 가면라이더는 어떻게 하나 모르겠다."

침애의 한 켠을 차지하고 누운 센토의 옆에, 슬그머니 같이 누운 반죠가 자고있는 센토를 쳐다본다.

그래, 악마면 어떻고 허상이면 또 어떤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내 옆에 살아 숨쉬고 있는 키류 센토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반죠는 자신의 용량부족인 머리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하고, 잠자는 연인의 곁에서 자신도 잠을 청했다.

 

 

3.

"....윽, 센토."
"응?"

허우적대듯이 손을 뻗어 잡은 옷자락은 반죠의 생각보다 순순히 손에 들어왔다. 방금 전의 허한 느낌은 뭐였던 거지? 주름이 질 정도로 꽉 잡았던 옷자락을 놓고서 주먹을 눈앞에서 쥐었다 폈다 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누르는 느낌이 생생하다. 물론 아까 전 천을 쥐었던 느낌도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아니…. 아냐.  꿈을 이상한 걸 꿔서..."
"그러게 낮잠 좀 그만 자라고 했지. 얕게 잠든 상태에서는..."
"아 예 예 알겠습니다. 그만 좀 해라. 나는 싸우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피곤하니까 어쩔 수 없이 자는 거지. 게으르게 낮잠 자는 게 아니거든? 이유가 있다고 이유가..."

중얼대듯 변명을 뱉어내는 반죠를 보고 센토는 어이가 없단 듯한 표정을 짓고 다시 의자를 끌고 책상 앞으로 향한다. 그런 센토를 보며 반죠는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만 들고 눈을 깜빡였다. 분명 사람이니까 손에 잡히는데 말이지. 그치... 센토는 진짜 있는 거니까 손에 잡힌단 말야?

"근데 왜 잡으면 그대로 훅 바스러져서 사라질 것 같지..."

웅얼거리며 내뱉은 혼잣말은 다행이도 센토에게는 닿지 않는 듯했다. 왜 그렇게 어디로 훅 사라져버릴 것처럼 구는 거야. 네가 그러니까 이상한 꿈이나 꾸고 이상한 기분이나 느끼고 그러는 거잖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자신의 베스트 매치를 보며 반죠는 다시 점점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이쪽으로는 시선 한 번 안 준 채 고민이 가득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센토가 보였다. 대체 뭐가 그렇게 혼자 고민이야. 뭘 그렇게  혼자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데. 천천히 끔벅이던 눈이 결국 굳게 닫힌다. 

아. 또다시 꿈을 꾼다.
마치 곧 부서질 것 같은 센토를 붙잡으려 아무리 끌어안아 봐도, 결국 손안에 남는 건 먼지뿐이어서, 반죠는 요새 자주 보는 이 꿈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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