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체화 주의
“후하하하! 하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남자 놈들이 여자의 몸을 갖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커헉”
“그래, 그래서 대체 이 상태는 언제 돌아오지?”
“하…하루 정도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한다 토우는 언제나처럼 거리에 나타난 웬 변태 흡혈귀의 양손을 잡아 뒤로 꺾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째 고위 흡혈귀랍시고 나타나는 녀석들은 전부 이런 이상성욕자들 뿐인 건지. 자꾸만 앞에서 본인의 성벽을 밝히는 이 변태 흡혈귀 ―자칭 흡혈귀 여체화 너무 좋아를 더 날뛰지 못하게 붙잡아두며 자신의 옆에 뭔가 불안한 듯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후배를 쳐다봤다. 상당히 현재 상태가 적응이 안 되는 듯, 서 있는 자리에서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면서도 혹시 흡혈귀가 도망가면 바로 다시 잡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재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 한다는 VRC가 이 녀석을 인수해가면 칭찬해줘야겠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 녀석 말대로라면 내일이면 돌아갈 듯싶고… 오늘은 어차피 비번이었으니 말이지. 흡대가 저녁 출근이라 다행이군!”
“아니, 오히려 너무 태연히 있는 선배 쪽이 이상한 거라고요.”
움찔, 평소 대화하듯 한 거리감이었을 텐데. 사교우는 자신을 바라보고 말대꾸를 하다 급하게 다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왜지? 나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 자리에서 혼란스러워하며 아, 젠장… 말도 안 돼, 짜증 나… 같은 네거티브한 혼잣말을 연속으로 쏟아내는 사교우에게 다시 말을 걸기도 그래서 한다는 그 후 VRC가 도착해 흡혈귀를 인수해 갈 때까지 별말 없이 포박만 하고 있었다.
큰 문제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갑자기 냅다 몸이 여자가 되었으니!! 억울함과 혼란스러움으로 찔끔 새어 나오는 눈물을 겨우겨우 참으며, 사교우는 다시 한번 흘긋, 하고 제 선배가 서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검은 스트레이트, 연상, (좀 귀찮고 짜증 나고 한대 때리고 싶을 때가 훨씬 많지만) 자신을 아끼고 오냐오냐해주는… 거유의 누님! 아니, 지금은 언니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그 부분이 아니다. 늘 자신이 말하고 다니던 환상의 이상형이 바로 곁에 있으니까. 그게 평소에도 늘상 곁에서 함께 다니던 선배라는 부분만 빼면.
신이시여, 어째서 이런 장난을 치는 건가요. 사교우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하아, 하고 큰 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신이란걸 안 믿어서 벌 받은 걸까? 신을 믿으면 어쩔 건데, 저만 원래대로 돌아오고 선배는 평생 저 상태로 살게 해 주세요 그럴 거냐? 머릿속이 와글와글 시끄럽게 떠드는걸 사교우는 정리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인간은 또 저 인간대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고요… 솔직히, 언뜻 옆에 서 있던 자동차의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여동생과 정말 쌍둥이 수준으로 닮았다는 것에도 충격이 컸지만, 자신이 이 상황에 부닥치고서 선배를 보자마자 순간 두근, 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 사교우는 정말로.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두근? 두근은 개뿔, 무슨 사고 날까 봐 두려움에 두근댄 게 아니고? 그 직후부터 VRC의 자동차가 떠나갈 때까지 일부러 선배를 눈에 담지 않기 위해 얼굴에 손을 올리고 있던 사교우는, 자신을 부르는 한다의 말에 결국 손을 내렸다.
“사교우.”
“…네, 선배.”
“아니, 눈은 왜 감고 있는 거냐?”
“그야 당신을 직시하기 좀 그러니까 그렇지!”
왜냐!? 라며 어이가 없단 듯이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손가락으로 억지로 머리를 붙잡고 흔들어대는 선배에, 사교우는 더 힘을 줘 질끈 눈을 감았다. 아아, 너무 가까이 오지 마시라구요, 닿는다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슴이! 아니, 나는 평범한데 당신은 왜 이렇게 큰 건데! 이건 이것대로 약간 짜증 나네, 남자일 때도 물론 저쪽이 훨씬 체격도 몸매도 좋고 했으니 당연하겠지만! 한참을 사교우를 붙잡고 왁왁 떠들던 한다는, 사교우가 절대 자신에게 반응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고서는 겨우겨우 손을 놓아줬다. 한다가 떠나가는 걸 느낀 사교우는 그제야 몸의 힘을 풀고, 미간을 푼다.
“그렇게 싫은 거냐.”
“아뇨, 싫다기보단…”
취향이라서 보면 두근거릴까 봐 무서워서요. 그런 말을 할 순 없었다. 앞에 있는 이 샐러리 광인이 이제는 자신에게까지 원한을 품고 괴롭혀 올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그건 부가적인 문제고, 한다에게 부정적인 눈길을 받는 게 사교우는 아직 두려웠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임무 직후 잘했다며 칭찬해주고, 오늘도 같이 움직이고… 심지어 자신과 선배는 전투 궁합이 좋다. 둘이 함께 조를 짜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흡혈귀 대책과는 무슨 학교 모임 같은 게 아니라 직장이다. 아무리 사이가 틀어져도 자신들은 결국 함께 다녀야 할 텐데, 차가워진 눈빛의 선배를 하루 종일 보게 될 생각을 하면 사교우는 머리가 아찔했다. 아무리 질색팔색을 해도 한다는 자신의 선배이자 인정하긴 싫지만 아주 약간, 정말정말 아주 약간 존경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아, 방금 상상한 것만으로 살짝 상처받았어.
그런 생각을 하느라, 사교우는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나게 조용해졌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뭐지? 혹시 내가 혼자 멍하니 있는 동안 로널드 씨라도 지나가서 그 사람을 따라갔나? 아니, 그런 거면 로널드―! 하고 큰 소리가 났겠지. 혹시 방금 그걸로 자기 혼자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먼저 가 버렸나. 그런 생각에 슬그머니 눈을 뜬 사교우의 앞에는, 살짝 굳은 표정의 한다가 서 있었다.
아, 실수했다. 두근, 두근. 조금 상처를 입은 듯한 표정은, 원래도 잘생겼던 얼굴에 시너지를 더해 꽤 마음에 쿡 하고 박혔다. 왜 그런 표정으로 서 있는 거야 당신. 하긴 방금 전에 내가 막무가내로 손대지 말라고 난리를 쳤었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한 반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사교우는 정신을 차리고 한다를 살짝 올려다본다. 별로 키 차이가 변하거나 하진 않는구나. 둘의 시선이 맞았다.
“조금 진정했나, 사교우.”
“네… 죄송해요. 방금 전엔 그러니까, 좀 혼란스러워서.”
“그래, 그럴 수 있지.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당신한테 설렌다는 게 혼란스러워서. 라는 문장의 앞부분은 쏙 빼놓고, 적당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자신에게 대답하는 선배는 아까보다 훨씬 침착한 듯한 말투였다. 갑자기 변한 분위기가 살짝 어색해져서 사교우는 머뭇대다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괜찮으신 건가요, 선배는. 생각해보면, 자신도 당황스럽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 한다는 자신보다 사교우부터 진정시키는 데 급급했다. 그 말을 들은 한다는 살짝 놀란 듯이 그 샛노란 눈을 한번 깜빡이더니 씨익, 하고 다시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아아! 하지만 좀 아쉬운 건 있군, 내가 여자라면 분명 어머니를 닮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만…”
“원래 첫째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도 있잖아요.”
“윽, 그런가…”
아,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웃는 한다의 모습을 보고 사교우는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던 어깨의 힘을 풀었다. 왜 긴장하고 있었던 거지, 긴장이 빠지며 살짝 풀어진 표정의 사교우를 본 한다가 싱긋 웃으며 손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움직임에 사교우는 다시 한번 놀라 자기 선배를 올려다봤다.
“다행이군. …솔직히, 네가 징그럽다고 거리를 두게 된 건 아닐까 아주 약간 걱정했다.”
“…그런 걱정을 하시려면 평소의 기행부터 그만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우하하!”
한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의 내용이었다. 자신만 하고 있을 줄 알았던 걱정인데, 그걸 선배도 하고있다니. 조금 붉어진 얼굴을 아닌 척 외면하며 사교우는 평소 같은 말을 내뱉는다. 그렇구나, 선배도 나한테 미움받긴 싫은 거구나. 그 사실이 어쩐지 기뻤다. 이 기분이 뭔지는 아직까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주변 상황도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으니, 슬슬 집으로 가는 게 좋겠군. 조심하고, 내일 직장에서 보자. 그런 인사를 건네고서, 한다는 사교우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은 진짜 별 이상한 일이 다 있었네…”
선배가 쓰다듬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한다가 걸어간 길을 보다가, 사교우도 발걸음을 옮긴다. 선배의 말 그대로였다. 흡대는 저녁 출근이니까, 자고 일어나면 이 잠깐의 혼란은 금세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잠깐의 완벽한 이상형과의 만남도 방금 그 순간이었던 것이다. 어쩐지 간질간질한 가슴을 뒤로 하고, 사교우는 숙소에 돌아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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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하하! 사교우! 건강해 보이니 다행이군!”
“잠깐!! 갑자기 뒤에서 들이닥치지 마세요!!”
뭔가 이상했다! 아니,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그야, 그야. 어제 그 두근거림은 이상의 이상형과 만났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였지만… 평소처럼 출근해서 의자에 앉아 잠시 멍하니 책상 위에 있는 고비와 놀아주고 있던 순간, 갑자신의 뒤에서 껴안듯이 어깨동무를 해 오는 선배에게 두근거리는 건, 역시 잘못된 거 아닌가!? 어제 그 흡혈귀의 능력이 아직 남아있는 건가!? 여체화 말고 다른 능력도 있었던 거 아냐?!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순간, 갑작스레 액셀을 밟게 된 선배를 향한 사랑의 허리케인이 시작되었단 걸 아직 이 시기의 사교우는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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